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성급하게 도입해 민간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과 경쟁하는 전략을 취하기보다는, 우선 민간의 스테이블코인 실험을 관찰하고 학습해 ‘더 나은 정책 판단’에 도움을 얻는 편이 낫다고 미국 스테이블코인 전문가가 말했다.
8일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전광우)에 따르면 이날 이 연구원이 ‘왜 지금 스테이블 코인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웨비나에 연사로 나선 고든 리아오 박사(미국 핀테크 기업 ‘서클’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대체하거나 경쟁하기보다는, 코인을 현장에 도입하기 이전에 학습과 실험이 가능한 실용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민간의 실험을 관찰하고 규율함으로써 더 효과적인 정책 도출이 가능하다”며 “한국은행이 CBDC를 성급하게 도입하기보다는, 그 대신에 민간에서 이뤄지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실험을 관찰하고 학습해 더 나은 정책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글로벌 핀테크 기업 서클(Circle)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USDC는 현재 시가총액 약 62억달러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테더(USDT)에 이어 점유율 2위(25%)를 기록하고 있다.
리아오는 또 “스테이블코인이 그저 1달러 가치를 가지는 단순한 토큰처럼 보이지만, 세계 금융시스템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금융 인프라의 혁신”이라며, TCP/IP가 인터넷 통신을, 컨테이너박스가 글로벌 무역을 바꿨듯이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의 기본 단위를 다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마법도, 위험 그 자체도 아닌 하나의 인프라”라며 “이미 2024년 기준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글로벌 결제규모가 10조 달러를 넘어섰는데 이는 비자(Visa)카드 네트워크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실험이 아닌 현실이자 필수 도구”라고 했다. 2024년 이후 유럽(EU)·일본·홍콩 등 각국이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실행하면서, 은행·핀테크·자산운용사들이 전략적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어 “이제 호기심에서 전략으로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리아오 박사는 최근 스테이블코인이 급부상한 배경에 대해 △기존 국제 결제시스템이 안고 있는 ‘송금·지급결제가 느리고, 수수료가 비싼’ 비효율성 △스테이블코인 실용 사례의 폭발적 증가세 △고금리 시대에 전통 금융을 보완하는 ’새로운 유동성 프론티어 확장’ 수단으로 부상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규제 환경의 명확화 흐름 등을 꼽았다. 스테이블코인이 국가 간 송금을 몇초 만에 저렴한 수수료로 처리할 수 있어, 느리고 비싼 기존 글로벌 결제 방식을 획기적으로 대체하고 기업과 무역에 실질적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은행은 최근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움직임이 빨라지자 기존에 진행하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시범사업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한겨레 / 조계완 기자
원문 :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2068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