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공항이 ‘여권 없는 여행’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기술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생체인식으로 출입국 절차를 간소화하고,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신원(DID) 시스템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까지 구현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2024년 이후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얼굴과 홍채만으로 출입국 심사를 완료할 수 있는 바이오 인증 시스템을 도입했다. 프랑스 보안기업 이데미아(Idemia)의 기술이 적용된 이 시스템은 출입국 소요 시간을 기존 대비 40% 줄이는 성과를 보이며, 창이공항 전체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다만 수하물 위탁 등 일부 절차에서는 여전히 여권이 필요해 완전한 무여권 여행을 위해선 추가적인 기술 적용이 요구된다.
중동의 아부다비 자이드국제공항은 ‘스마트 트래블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전 구간 생체인증 기반 자동화를 시도하고 있다. 공항 입구부터 면세점, 탑승 게이트까지 모든 체크포인트에서 얼굴이나 홍채를 인식해 신원을 인증하며, 일부 승객 대상 시범 운영 결과 공항 내 전 구간 이동 소요시간을 15분 이내로 단축했다. 공항 최고정보책임자(CIO) 앤드류 머피는 “등록 없이도 승객이 이동하는 동안 자동으로 인증되며, 국가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해 완전 자동화를 실현했다”고 설명했다.
두바이 국제공항은 이미 2018년 ‘스마트 터널’을 통해 무인 출입국 시스템을 구현했다. 탑승객이 별도의 절차 없이 터널을 통과하면 15초 이내에 얼굴 인식으로 출입국이 완료되며, 이 시스템은 이후 체크인, 라운지 입장, 탑승 등 다양한 절차에 확장 적용됐다. 다만 이처럼 생체정보가 정부 기관에 중앙 저장되는 구조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함께 논란을 낳기도 했다.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신원’ 실험 확산
공항의 생체인증 시스템이 정교해지는 가운데,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개인정보를 분산 관리하는 시도도 병행되고 있다. 대표 사례로 세계경제포럼(WEF)의 ‘KTDI(Known Traveller Digital Identity)’ 프로젝트가 있다. 이 시스템은 여권 정보를 블록체인에 저장하고 지문·안면 인식으로 본인을 인증하는 구조다. 2024년 초에는 캐나다와 네덜란드 간 노선에서 시범 운영을 재개했으며, 이용자는 셀피와 여권 정보를 등록해 디지털 신원 증명을 생성하고, 공항 도착 전 본인 정보를 사전 공유해 빠른 심사가 가능해졌다.
카리브해 아루바 공항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여권 기술을 본격 도입한 사례다. IT기업 시타(SITA)와 스타트업 인디시오(Indicio)가 개발한 시스템은 여권 데이터를 스마트폰 지갑에 암호화 저장하고, 승객 동의하에 검증가능 증명서(VC) 형태로 출입국 기관에 공유한다. 해당 시스템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DTC(Digital Travel Credential) 표준을 따르며, 블록체인 네트워크 ‘하이퍼레저 인디(Hyperledger Indy)’를 기반으로 운영돼 프라이버시 보호와 보안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영국 정부도 2024년 ‘프릭션리스(Frictionless) 보더’ 시범 운영을 예고했다. 공항에 설치된 바이오메트릭 카메라 통로를 통해 정지하지 않고도 얼굴 인식만으로 신원을 인증받는 시스템이다. 여권 정보와 셀피를 앱에 등록한 후 간단한 문답을 마치면, 입국 시 별도 서류 없이 얼굴만으로 신원 확인이 이루어진다. 이는 전자여권과 e게이트를 넘어선 완전 비접촉 국경 관리 체계로 평가받는다.
인천공항도 ‘스마트패스’로 변화 중
한국도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맞춰 공항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은 2023년부터 안면인식 스마트패스를 도입해, 출국 보안검색대와 일부 탑승구에서 여권 없이 얼굴 인증만으로 통과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전용 키오스크 또는 모바일 앱에 안면 정보를 미리 등록하면 최대 5년간 사용할 수 있으며,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일부 항공편에서 탑승권 없이 이동이 가능하다. 전국 14개 공항은 2022년부터 손바닥 정맥 인증 기반 ‘One ID’ 탑승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다만 현재까지는 출입국 심사 단계에서 여권 제시가 필요하고, 생체정보가 공항 시스템에 최대 5년간 저장되는 구조여서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제약이 있다. 국내 규정상 생체정보는 민감정보로 분류되며, 2023년 ‘월드코인(Worldcoin)’의 홍채정보 스캔 논란 당시 한국 정부는 해당 정보의 해외 반출을 불허한 바 있다.
‘휴머니티 프로토콜’이 바꿀 미래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차세대 대안으로 떠오른 기술이 바로 ‘휴머니티 프로토콜(Humanity Protocol)’이다. 이 시스템은 손바닥 정맥 인식과 블록체인 기반 DID 기술을 결합한 구조로, 원본 생체정보를 중앙서버에 저장하지 않는 점이 핵심이다. 사용자가 전용 스캐너에서 손바닥 정맥을 스캔하면 단말기 단에서 고유한 암호로 바꾸어 중앙 서버에 올린다. 그리고 암호화된 수치만 네트워크로 업로드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문제가 없다. 실제 식별자나 이미지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으며, 영지식증명(ZKP) 방식으로 “본인임”을 증명하는 신호만 전송된다.
국내 공항 시스템에 이 기술이 적용된다면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 △중앙DB 저장이 없어 해킹 위협 감소 △이용자 정보의 자율적 관리 △국경 간 상호 신뢰 가능한 신원 인증이 가능해진다.
특히 영지식 증명 기반 인증서를 발급받은 이용자는 인천공항뿐만 아니라 외국 공항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검증을 받을 수 있어, 국경 간 민감정보 공유 없이도 인증 절차가 일원화될 수 있다. 위·변조가 어려운 손바닥 정맥 정보는 AI 딥페이크 시대에도 높은 보안성을 확보해준다.
여권 없는 공항, 현실이 될까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2023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생체인증 기반 공항 서비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어린이나 고령자의 생체정보 변화, 중앙 서버 저장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EU가 2024년 시행 예정인 출입국 시스템(EES)은 외국인의 생체정보를 최대 3년간 보관하도록 규정했지만, 대규모 정보 유출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블록체인 기반 분산신원 기술(DID)이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는 핵심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 도입을 위한 제도 정비와 국제적 표준 마련이 병행된다면, 한국 역시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프라이버시 중심 글로벌 스마트공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이다’를 증명하는 기술, 그리고 여권 없이 이동하는 미래는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블록미디어 / 박현재 기자
원문 : https://www.blockmedia.co.kr/archives/929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