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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동향

[정책 및 기술동향] 가상자산 대선 공약에 대한 고찰
2025.05.27

2025년 대한민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각 정당과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가상자산, 즉 디지털 자산과 관련된 공약이 눈에 띄게 늘어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과거에는 주로 청년층 일부의 관심사에 머물던 가상자산이 이제는 국가 차원의 산업 전략과 금융 제도 개편의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의 2024년 상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래가능 이용자 수는 778만명이며, 가상자산 일평균 거래액은 약 6조원에 이르렀다. 이는 2024년 코스닥 시장 일평균 거래액인 8조원의 75%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또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가상자산은 실물경제와 연계된 실물자산 토큰화(RWA),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디지털 증권(STO) 시장 등으로 급속히 확장되고 있으며, 미국·유럽연합(EU)을 포함한 주요국은 이미 디지털 자산 관련 제도 정비를 완료하거나 적극 추진 중이다.

 

대한민국 역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후보가 앞다퉈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가상자산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도입 공약이다. 현물 ETF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실체 기반의 자산을 추종하는 금융상품으로, 이를 제도권 금융시장 내에 편입시키겠다는 구상은 사실상 가상자산을 공식 금융 자산으로 수용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외에도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스테이블코인 규제 도입, 거래소-은행 간 자유 연계 보장, 통합감시시스템 구축, 공공기관의 가상자산 투자 허용 등 다양한 정책이 공약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약이 실제 정책으로 전환되기까지는 극복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첫째, 공약 대부분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상자산 ETF 도입은 국내 금융당국의 현행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는 사안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조차 현물 ETF 승인에 신중했던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 국회, 법무부 등 관계기관과의 세밀한 협의가 선행돼야 하며, 단순한 정치적 수사만으로는 실현이 어렵다. 둘째, 투자자 보호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디지털 자산 시장은 높은 가격 변동성과 함께 해킹, 시세조작, 루그풀(rug pull) 등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 구조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약은 산업 육성,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균형이 무너진 인상을 준다. 이용자 자산의 실질적 보호를 위해서는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 구축, 보험 제도, 디지털 자산 분쟁 조정 기구의 설치 등 법제화가 병행돼야 한다. 셋째, 글로벌 규제 정합성과 국제협력이 부족하다. 가상자산은 본질적으로 국경을 초월한 시스템이다. 즉, 국내 규제만으로는 시장 안정성과 사용자 보호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IMF 등이 제시하는 글로벌 규범과 정합성을 맞추지 못할 경우, 한국 시장은 '규제 리스크 국가'로 분류되어 글로벌 투자자본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대선 후보들의 가상자산 공약은 몇 가지 점에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첫째, 실현 가능한 단계별 로드맵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현물 ETF 도입을 주장한다면, 이를 위한 법 개정, 금융당국과의 사전 조율, 시범 운영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단순한 '허용'이라는 단어로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둘째, 산업 육성과 투자자 보호를 투트랙으로 병행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규제 유예를 제공하면서도, 투자자에 대한 사후 보호 체계는 법률로 명문화해야 한다. 특히 소액 투자자 보호를 위한 사기 방지, 책임 이행 구조는 디지털 자산의 공정성을 결정짓는 핵심이다. 셋째,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국내 시장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환경으로 정비해야 한다. 이는 외국인 투자 유치, 한국산 디지털 자산의 신뢰도 제고,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해외 진출 등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가상자산은 단지 새로운 투자 수단이 아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국가의 금융 시스템과 경제 생태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가늠하는 핵심 자산이자 산업이다. 이번 대선에서 제시된 공약들이 단기 표심을 얻기 위한 수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산업과 투자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제도 설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국민은 공약을 기억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와 기술 생태계 종사자들은 '실행력'을 중심으로 다음 정부를 평가할 것이다. 가상자산 정책은 이제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대한민국 디지털 금융 주권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 과제가 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설계다.

 

전자신문 /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원문 : https://www.etnews.com/20250527000037?SNS=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