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중앙은행디지털 화폐(CBDC)’ 활성화를 위해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21년부터 CBDC 도입을 위한 연구와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한은은 지난 4월부터 ‘프로젝트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실거래 테스트에 나선 데 이어 최근에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6대 은행장을 직접 만나며 ‘CBDC 세일즈’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다.
26일 한은에 따르면 이창용 총재는 이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기업은행 등 6개 은행 행장들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는 CBDC 관련 국제 협력 사업인 ‘아고라(Agora)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아고라 프로젝트는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금융협회(IIF) 주도로 진행되며 기관용 CBDC와 시중은행의 토큰화된 예금을 활용, 국가 간 지급 결제 시스템의 개선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골자다. 5대 기축통화국(미국·영국·프랑스·일본·스위스)과 한국·멕시코 등 모두 7개국 중앙은행이 함께 하고 있다.
한은은 비기축 통화국 중 유일하게 멕시코 중앙은행과 함께 지난해 4월부터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6개 은행도 지난해 9월 민간 참가 기관으로 선정됐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을 방문한 티모시 애덤스 국제금융협회(IIF) 회장이 참석해 질의 응답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한은 관계자는 “아고라 프로젝트 참여국과 BIS간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회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상황”이라면서 “이번 회의는 큰 의제를 정하지 않은 정례적인 미팅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다 앞서 이 총재는 6대 은행을 직접 찾아 각 은행장을 만나 사전 미팅도 진행했다. 아고라 프로젝트의 추진 배경을 설명하고 은행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한은 총재가 일선 은행장을 찾아 개별 면담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란 평이다. 일각의 정치권 및 학계에선 한은이 추진 중인 CBDC와 이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과 예금 토큰을 모두 아우르는 융합구조를 모색해야 한다며 이를 통합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법적 요구도 제시된 상태다.
한은 관계자는 “디지털화폐가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만큼 총재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한은은 올 하반기 아고라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 구축 및 테스트 수행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이 총재는 ‘프로젝트 한강’에 대한 은행권의 적극적인 참여도 거듭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은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한강은 6대 은행에 BNK부산은행까지 총 7개 은행이 참여하고 있는 CBDC 실험 프로젝트로, 지난 4월부터 모집자를 대상으로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아고라 프로젝트와 유사한 구조의 프로젝트 한강은 편의점과 카페, 서점, 마트 등 사용처에서 QR코드를 찍으면 한은이 발행한 CBDC를 바탕으로 한 예금 토큰으로 결제되는 방식이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CBDC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구축될 경우, 자금의 청산 결제 시스템을 디지털 방식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 실물경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이는 예금토큰만 관련된 건 아니라 향후 스테이블코인 청산 결제 방식하고도 연결해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두고 일부 잡음도 들린다. 은행권은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실험이 결제·정산 인프라 혁신의 토대가 될 것이란 점에서 취지는 공감하지만, 한은의 적극적인 은행권 참여 유도가 되레 업계 내 경쟁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신한·국민·하나은행을 제외하곤 프로젝트 한강의 할당된 은행별 모집 인원 1만 6000명(기업·부산은행은 각 8000명)이 미달해 은행별로 미묘한 경쟁체재에 놓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은의 CBDC 활성화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나 이것이 본질과 달리 개별 은행들의 경쟁 구도로 번지진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면서 “민간 참여사들이 기술적·정책적 기여를 충실히 수행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 정두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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