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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동향

[정책 및 기술동향] 절박한 블록체인 생태계…정권 바뀌자 커진 산업계 목소리
2025.08.05

블록체인 업계가 디지털자산의 법적 지위 확보 등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환경 변화를 계기로 그동안 침묵하던 업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5일 블록체인 업계에 따르면, 전날 국내 블록체인 기업들이 ‘웹3기업협회’를 출범시키고 정부에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과 탈중앙화 산업 육성을 촉구했다. 법적 불확실성 탓에 사업을 접거나 해외로 이전한 사례가 늘어난 가운데 이들의 주장은 이제는 기회를 달라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새로 생기는 업체는 없고 망하는 업체만 있다”며 “인력도 인공지능 등 다른 업계로 뺏기면서 가까스로 버티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심정우 웹3기업협회 공동회장은 “블록체인 업계는 생존을 눈앞에 두고 하루하루 피 말리게 살고 있다”며 “이슈가 생길 때만 관심이 솟았다가 곧 식어버리는 흐름이 반복되는 동안 기업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 탈중앙화로 다시 뭉친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는 2021년을 전성기로 본다. 당시만 해도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에 대한 기대가 컸고 프로젝트가 추진되며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면서 이미지가 실추됐고 어렵게 되찾은 주목도는 2022년 테라·루나 사태로 다시 추락했다. 이후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런 가운데 웹3기업협회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복원하고 새로운 성장 모델을 모색하겠다며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웹3.0은 분산화와 개인 데이터 소유권 강화, 인공지능 및 블록체인 기술이 결합된 차세대 인터넷 패러다임이다.

 

헨리 킴 피어테라 의장은 “웹3.0은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데이터 주권과 신뢰 기반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며 “글로벌 웹3 생태계는 향후 10년 내 100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산업은 기술보다 규제가 앞섰단 비판을 받는다. 국내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과 지난해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대표적인 규제다. 그러나 두 법 모두 범죄 방지나 이용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산업을 키울 수 있는 법적 기반은 여전히 미비하다.

 

회계 기준, 과세 기준, 자산 정의, 투자자 보호 등 사업에 필수적인 영역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 탓에 국내 스타트업들은 자금 조달, 마케팅, 플랫폼 운영 등 각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글로벌 블록체인 규제는 진화중

 

송민택 포스텍 연구위원은 “기술은 진화하고 있는데 제도는 제자리걸음”이라며 “AI 시대에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데 필수적인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을 위해, 규제 장벽을 낮춰 실험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웹3의 핵심인 탈중앙화 기술은 글로벌 차원에서 이미 공공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EBSI(European Blockchain Services Infrastructure)’를 통해 디지털 신분증, 자격증, 학위 발급 등 다양한 행정서비스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했다.

 

EU는 지난해 말 ‘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를 시행했다. 자산참조형 토큰과 암호자산 보관, 중개 서비스 제공 등을 포괄하는 규제로, 유럽 27개국에 적용됐다.

 

미국도 지난달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로 불리는 지급형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을 상·하원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금융의 일부로 공식 인정하며, 발행사는 1:1 지급준비금을 안전자산(달러, 국채 등)으로 확보하고 매월 내역을 공개하도록 했다.

 

아시아 금융허브인 싱가포르와 홍콩도 관련 규제를 정비했다. 싱가포르는 지난 6월 말부터 디지털 토큰 서비스 제공자 라이선스 제도를 전면 시행했고 홍콩도 거래소 기반 인가 제도를 구축했다.

 

◇ 콘텐츠 산업과의 접점도 강조

 

한국은 디지털자산을 규제 체계 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아 혁신 기업의 진입을 막고 투자자 보호도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선미 동국대 교수는 “디지털자산은 단순한 가상화폐를 넘어 산업 구조를 재편할 기반”이라며 “이제는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정부·산업계·학계 간 공감대를 다시 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웹3가 단지 코인이나 NFT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조광현 포블게이트 최고연구책임자는 “블록체인은 창작자 경제의 인프라”라며 “K팝이나 e스포츠처럼 글로벌 팬덤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소비·생산·거래하는 문화가 웹3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화된 기업 플랫폼이 아니라, 팬들과 창작자가 주도하는 탈중앙화 생태계가 곧 글로벌 표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윤 빗썸 정책협력총괄 전무는 “대기업이 결제 방식만 바꿔도 수조 원의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며 “중소기업도 웹3 기반 결제 시스템을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규제를 실험의 장으로 바꾸는 ‘네거티브 규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업계와 학계, 정책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이제는 정부가 나설 때’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EU, 싱가포르 등 경쟁국들이 디지털자산 규제를 산업 육성의 기회로 삼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범죄 대응에 집중하는 규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처 간 이기주의, 정책 엇박자, 투자 생태계 부재 등 구조적 문제가 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교수는 “K-디지털어셋펀드 조성, 디지털 자산 기반 플랫폼 구축 등 실질적인 투자가 필요하며, 대통령 직속의 정책 조정기구가 신설돼야 한다”며 “규제 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시사저널e / 송주영 기자

원문 : https://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414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