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동안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
가족이나 친척, 친구, 동료, 이웃, 동호회 회원 등을 모두 합쳐도 수백 명 정도일 것이다. 물론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지인까지 합하며 그 수는 더 늘어날 수 있지만 미래 메타버스 세상에서 펼쳐질 인맥과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로,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메타버스가 열어갈 가상 세계의 인간관계에서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메타버스를 통해 인류는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만남의 기회를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해나갈 것이다. 그런데 쉽게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는 현상은 기존의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냉장고 속의 음식이 끊임없이 채워지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음식들은 상해서 버려진다. 또 더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이 오면 기호도가 떨어지는 음식은 외면당하고 버려진다.
디지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가상 세계에서는 네트워크를 통해 너무 쉽게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관심에서 멀어진 이들과의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다. 마치 게임을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 디지털 공간 속 자발적 거리 두기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차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면서 관계를 맺는 방식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많은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 이뤄지는 과거의 관계 맺기 방식에 점점 관심이 줄어든다. 혼자서 디지털 세상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디지털 세상에서 관계 맺기가 익숙하고 편안해질수록 과거의 관계 맺기 방식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점점 늘어난다.
전원을 켜고 로그인만 하면 쉽게 상대를 마주할 수 있는데, 굳이 걷거나 차를 타고 오랜 시간을 움직이며 복잡한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마주 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은 오프라인 만남을 최대한 지양하고 디지털 환경에서 관계를 지속하고 혼자 지내는 연습을 해왔다.
비즈니스 활동이나 회사 생활, 취미 활동 등을 디지털 환경에서 수행했고, 사적인 만남 또한 최대한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졌다. 선택이 아닌 팬데믹으로 강제된 환경임에도 많은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잘 적응했다. 심지어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정도가 됐다.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오면서 사람들의 일상도 크게 변화했다. 영화 관람만 하더라도 과거의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과거에는 영화를 보려면 보통 연인이나 친구처럼 함께하거나 다수의 낯선 사람과 극장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 동시에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 관람은 일반적으로 다수의 사람과 함께하는 '공적인' 행위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대부분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가지고 넷플릭스, 유튜브, 왓챠 등에서 제공하는 OTT(Over The Top) 서비스로 영화를 시청한다.
이제 영화를 보는 것은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 아니 혼자일 때 더 편한 지극히 '사적인' 일이 돼버렸다.
일상의 다양한 활동이 디지털 방식으로 변화되면서 공감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 극장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볼 때를 떠올려보자.
영화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어두운 극장 안에서 얼굴도 모르는 다수의 사람이 공감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무섭고 끔찍한 장면이 나오면 함께 비명을 지르고, 코믹하고 유쾌한 장면에서는 다 같이 박장대소했다. 그러나 이제는 극장이나 공연장이 아니고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과거의 공감 방식이 돼버렸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SNS에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거나 메타버스 세계에서 디지털 아바타들과 함께 공감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영화를 볼 때 느꼈던 슬픔과 공포, 분노와 기쁨도 이제 디지털 세상에서 텍스트로 남겨지고, 댓글이나 '좋아요'로 공감을 표현한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근원인 감정마저도 디지털 방식으로 표현되고 공감되는 세상에서 인간은 더욱 개인화되고 외로워지고 있다. 더군다나 인간은 이러한 고독에 매우 익숙해지고 있다.
◇ 쉬운 만큼 가벼워지는 인간관계
인간과 동물은 항상 환경에 영향을 받고 환경에 최적화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기능은 더욱 발전하고 필요하지 않은 기능은 자연스럽게 퇴화했다.
디지털 가상 세계가 출현하고 심지어 실제와 가상이 잘 구분되지도 않을 미래의 다중적 세상에서 과거에 우리가 맺어온 인간관계도 어떻게 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태어나서 정해진 나이가 되면 학교에 진학하고, 학교 졸업 후에는 사회에 나가 회사에 취직한다.
학교나 사회에서 만나는 친구, 동료와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미래에도 과거의 인적 네트워크 형성 방식은 유지될 테지만 그 깊이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의 직접적인 활동보다 디지털 세상의 활동이 더욱 편해지고, 여럿이 함께하던 일을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현실 인간관계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
친구와 함께하던 많은 것을 혼자 하기 시작하면서 그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어느 순간에는 불편한 상황까지 올 수 있다.
비즈니스적인 관계인 회사 동료, 함께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 회원도 마찬가지다. 업무나 취미가 메타버스에서 가능해지면서 오프라인의 직접적인 만남이 줄어든다면 서로를 연결했던 관계의 끈은 점점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오프라인에서 모든 인간관계가 약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더 끈끈해질 수도 있다. 현실 공간에서 마주하는 사람이 극히 제한되면서 가족이나 연인처럼 소수의 사람과는 더 특별한 유대감을 갖게 된다.
반면, 메타버스에서는 과거보다 훨씬 확장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 메타버스 공간에 창조된 학교와 직장, 동호회 등에서는 많은 활동이 이뤄지므로 디지털 동료나 파트너, 친구가 엄청나게 증가한다.
다만, 인적 네트워크가 양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디지털 공간 속에서 인적 네트워크의 양적 확장은 앞서 말한 '과유불급'의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언제든 쉽게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될 수 있는 데다, 원한다면 수없이 많은 인맥을 가질 수도 있기에 관계의 맺고 끊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수많은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 우리가 참여하고 활동하는 메타버스를 쉽게 선택할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다는 특성과도 관련이 크다.
실제 현실 세계에서 학교나 직장을 옮기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메타버스에서는 언제든 참여할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다. 쉬운 만큼 가벼워지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만큼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려는 근원적인 욕구가 있다. 변화된 미래 메타버스 세상 속에서 형성할 수많은 인맥이 과연 우리의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연합뉴스 / 이세영 기자
원문 : https://www.yna.co.kr/view/AKR20250715148500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