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식 증명은 블록체인의 확장성과 프라이버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지만, 현재의 연산 인프라로는 현실적인 서비스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빠르고 효율적인 증명 생성을 위해 전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개발하게 됐다.”
사이식(Cysic) 공동창업자인 레오 판(Leo Fan)은 지난달 18일 <블록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코넬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블록체인 플랫폼 알고랜드(Algorand)에서 암호화 프로토콜을 개발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22년 사이식을 공동 창업했다.
레오 판 창업자가 주목한 기술은 바로 ‘영지식 증명(zk-proof)’이다. 그는 “영지식 증명은 프라이버시와 거래 검증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강점을 가졌지만 계산 구조가 복잡하고 처리 속도가 느려 실전 적용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이식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이처럼 영지식 증명에 주목한 이유는 블록체인이 현재 직면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중개자 없이 거래의 신뢰를 보장하는 기술로 주목받으며, 자산 거래, 콘텐츠 인증, 금융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실제 사용 환경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함께 드러나고 있다. 특히 속도, 수수료, 확장성 문제는 블록체인이 현실 세계에서 널리 활용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핵심적인 장애 요소로 꼽힌다.
이 가운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확장성 문제가 지적된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사용자와 거래 요청이 동시에 몰리면, 처리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고 수수료가 급등하는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이더리움과 같이 사용량이 많은 네트워크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화되며, 특히 속도와 효율이 중요한 디지털 자산의 전송, 블록체인 게임, 탈중앙금융(DeFi) 환경에서는 체감이 더욱 크다.
이러한 확장성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롤업(Roll-up), 샤딩(Sharding) 등 다양한 기술적 접근이 등장하고 있다. 롤업은 거래를 블록체인 외부에서 처리한 후 그 결과만 요약해 블록체인에 기록함으로써 네트워크 부담을 줄이고, 샤딩은 데이터를 여러 조각으로 분할하여 병렬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처리 속도와 비용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기술적 개선에도 거래 결과의 정확성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영지식 증명 생성 과정은 여전히 시간이 오래 걸려, 확장성 확보의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다.
사이식은 이러한 병목 문제를 풀기 위해 영지식 증명 연산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특히 특정 연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전용 반도체인 ASIC(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을 중심으로 연산 인프라를 최적화하고 있다. 레오 판 창업자는 “일반 CPU나 GPU만으로는 복잡한 영지식 증명을 빠르게 생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자체 설계한 ASIC으로 증명 생성 속도를 대폭 향상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자체 실험 결과, ASIC이 기존 CPU 방식 대비 10배 이상의 속도 향상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사이식은 속도 개선뿐 아니라, 다양한 환경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연산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다. 영지식 증명은 사용하는 알고리즘마다 연산 방식과 최적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고정된 시스템만으로는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기 어렵다.
레오 판 창업자는 “알고리즘별로 필요한 연산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며 “사이식은 다양한 증명 방식에 맞춰 연산을 지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으며, 실제 여러 프로토콜과의 연동을 고려해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술적 기반 위에서, 사이식은 외부 프로젝트들과의 협업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레오 판 창업자는 “사이식의 목표는 단순한 속도 개선이 아니라, 영지식 증명을 실제 활용 가능한 기술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며 “앞으로도 커뮤니티와 협력해 더 많은 사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확장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블록미디어 / 오수환 기자
원문 : https://www.blockmedia.co.kr/archives/899232#google_vign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