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주도하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거래 실험이 결국 2차 테스트를 앞두고 멈춰섰다. 실험 비용에 대한 은행권의 부담과 명확한 상용화 로드맵 부재가 주요 원인이었고 동시에 민간 주도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가 은행·핀테크 업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속도를 내는 흐름도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수익성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 모델이 규제와 사업성 사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30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지난 26일 한은은 CBDC 실거래 1차 테스트에 참여 중인 7개 은행들과의 회의에서 2차 실험을 잠정 보류한다고 공식 통보했다. 1차 테스트는 '한강 프로젝트'라는 명칭으로 진행됐으며, 각 은행이 30억~60억원 규모로 총 350억원가량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STR(의심거래보고), FDS(이상거래감지) 시스템 도입 등 정책 요건이 추가되고 상용화 계획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자 은행들은 후속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말 은행장들과 1대1 면담을 통해 절반 이상의 비용 분담도 제안했지만, 분위기 반전에 실패했고, 한은은 디지털화폐 실험 전담 부서를 다른 조직으로 재편할 예정이다.

CBDC 2차 실험이 좌초되자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합작법인을 통한 공동 발행 모델은 물론, 블록체인 및 간편결제 업체와의 협업까지 병행하며 발행 기반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국내 최대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는 최근 주요 금융지주들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발행 주체가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은행과 빅테크 모두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며 “핀테크와의 협업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간편결제 시장을 주도하는 네이버파이낸셜과 카카오페이도 관련 준비를 마친 상태다. 네이버는 지난해 '페이 월렛'을 출시해 NFT 기반의 자산 보관 기능을 도입했고, 가상자산 보관·전송 기능도 내부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페이 역시 상표권 등록 등 시장 진입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두 기업은 온라인·오프라인 결제 인프라를 이미 확보한 만큼, 스테이블코인 결제 확산 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지급결제대행(PG)사들도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다날은 지난 27일 스테이블코인 결제 상용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PG 인프라에 현재 운영중인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포함하고, 기술·운영·정책 측면의 대응 체계를 정비해 즉시 사용화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은행과 핀테크의 병행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 임민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유통 확장성에 제약이 있다”면서도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 모델은 규제와 수익성 사이 균형점을 맞출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리워드 기반 투자 자산화, 디지털자산 거래소 연계, 지급결제 인프라 통합 등 국내 중심의 확산 전략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흐름은 주가에는 아직 본격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준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제주은행은 전일 대비 각각 1.49%p, 2.49%p, 2.61%p 상승했고, KB금융지주(+0.27%p), 우리금융지주(-0.22%p)은 보합권에서 엇갈린 움직임을 보였다.

매일일보 / 나태용 기자

원문 : https://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1254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