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쟁터 한복판에서 블록체인이 ‘생존 기술’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은 국가 간 무력 충돌로 붕괴된 금융망과 행정체계를 대체하는 ‘위기 대응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기부금 전달부터 난민 식량 배급, 신분 증명까지 그 활용처는 다양해지고 있다.
디지털자산으로 이어진 전쟁 속 국제 기부 행렬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공식 SNS 계정을 통해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테더((USDT)) 등 디지털자산 기부를 요청했고, 단 며칠 만에 수억 달러 상당의 기부금이 전 세계에서 몰렸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은행과 국제 송금망이 마비된 상황에서 디지털자산이 유일한 생존 수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유엔난민기구(UNHCR)도 우크라이나 난민 구호를 위해 블록체인 기반 긴급지원 시스템을 도입했다. 카카오는 약 42억원 상당의 클레이(KLAY)를 유니세프에 기부하며 “극단적인 금융 차단 상황에서도 전달 가능한 방식”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을 통한 기부는 금융 시스템이나 은행의 제약 없이 빠르고 투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뢰를 얻었다.
신분 없는 난민들에게 ‘디지털 신원’을
전쟁으로 신분을 잃은 난민들에게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신원(DID) 기술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 2019년 요르단의 난민캠프에서 홍채 인식 기반의 ‘아이페이(EyePay)’와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식량 배급 시스템을 운영했다. 기존에는 은행 계좌 연동 방식이었지만, 높은 수수료와 개인정보 노출 위험으로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한 것이다. 블록체인 기반 DID는 계좌 없이도 본인 인증과 자금 수령이 가능하다.
WFP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2018년 말까지 약 3940만달러(약 536억원)의 식량 지원금이 지급됐고, 이 과정에서 59만달러(약 8억원) 이상의 수수료를 절감했다. 중복 수령 방지와 기부금 투명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효과를 입증했다. 국제기구들도 이러한 특성에 주목해 블록체인을 활용한 구호물품 수령과 의료 지원 등 복지 실험을 진행 중이다.
보급·통신·조달까지… 군사 작전의 ‘백엔드’를 바꾸다
이처럼 인도주의적 구호와 생존 지원에 쓰이는 블록체인은, 역으로 방위 산업에서도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방 기술은 보안과 투명성이 중요한 만큼, △사이버 보안 △무기 조달 △군수 물류 △통신 체계 등에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방위 작전에는 민감한 정보가 수반되는 만큼 데이터 보안이 필수적이다. 블록체인의 분산·변경 불가능한 구조는 데이터 변조와 무단 접근을 방지해 강력한 보안 환경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안전한 통신망 구축과 공급망 보호 등이 가능해져 사이버 공격에 대한 방어력을 높일 수 있다. 방위 조달 부문에서는 투명성과 추적성을 기반으로 계약과 거래 기록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 실제로 국방전산정보원은 지난 2020년 군의 무기체계 획득 관련 업무 시스템에 블록체인 적용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기부와 보안, 두 얼굴의 기술
위기 상황에서 신뢰를 담보하는 기술로, 블록체인은 단순한 금융 기술을 넘어선 생존 인프라로 진화 중이다. 글로벌 분석기관 더기빙블록에 따르면 2024년 디지털자산 기부 규모는 10억달러(약 1조3700억원)를 넘어섰다.
국내 업계에서도 이같은 흐름은 감지된다. 디지털자산 기부 플랫폼 체리는 올해 누적 기부액 200억원을 돌파했다.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는 이달 초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의 디지털자산 매도를 지원했다. 이 밖에 NGO와 블록체인 기업 간 협업도 확대되는 추세다.
블록미디어 / 문예윤 기자
원문 : https://www.blockmedia.co.kr/archives/928865